소설 《형상》
프롤로그
여섯째 날에 시작된 이야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창세기 1장 26절
“기록된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침묵은, 언제나 상상의 자리를 남겨 둔다. 이 이야기는 그 침묵을 따라간 하나의 소설이다.”
세상은 야훼의 말로 만들어졌다.
야훼가 한마디 하면 바다가 움직였고, 하늘이 열렸으며, 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섯째 날도 그랬다.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말이 끝나자 바다가 먼저 일어났다.
깊고 어두운 물속에서 생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바다 생물들이 물살을 갈랐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바다를 가득 메웠다.
그 가운데 몇몇은 물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젖은 날개가 처음으로 바람을 붙잡았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비어 있던 하늘은 처음으로 생명의 그림자를 품었다.
야훼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복을 주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복은 태어남과 함께 찾아왔다.
바다에서 나온 생명들은 처음부터 축복받은 존재였다.
여섯째 날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땅이 부름을 받았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
땅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열었다.
흙이 갈라지고 들짐승들이 걸어 나왔다.
가축들이 들판을 채웠고, 작은 생명들은 흙 사이를 기어 다니며 처음 보는 세상을 둘러봤다.
땅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바다가 그랬던 것처럼.
곧 자신이 낳은 생명들에게도 복이 내려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겠지.
땅은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더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야훼는 분명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은 세상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바다는 듣지 못했다.
새들도 듣지 못했다.
들짐승도,
가축도,
갓 태어난 뱀도 알지 못했다.
세상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향하지 않는 야훼의 말을 마주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견뎠다.
얼마나 오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알 수 없다.
세상은 그 침묵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었다.
마침내 침묵이 끝났다.
야훼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이번에는 말 한마디로 생명을 만들지 않았다.
손을 뻗어 흙을 한 줌 집어 들었다.
땅은 숨을 삼켰다.
이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생명은 모두 자신의 몸에서 태어났다.
야훼가 말하면 자신이 만들어 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자신의 흙이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고,
야훼의 손 안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품을 완성하듯.
땅은 그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형상이 완성되자 야훼는 그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었다.
흙이 숨을 쉬었다.
흙이 눈을 떴다.
그 순간이었다.
땅은 처음 보는 빛을 발견했다.
바다의 생명들에게도 없었다.
새들에게도 없었다.
자신이 낳은 어떤 짐승에게도 없던 빛이었다.
그 빛은 야훼를 닮아 있었다.
땅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야훼 앞에서만 느끼던 경외가,
이제 막 태어난 저 존재에게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짐승들이 걸음을 멈췄다.
가축들이 뒤로 물러났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도,
모든 생명이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흙이었던 존재 앞에서.
빛이 너무 강해서 누구도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왜 저 존재만 다른지,
왜 저 존재에게만 야훼의 빛이 머무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하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흙이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순간을 지켜본 존재.
바로 땅이었다.
그때 야훼가 말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은 그 말을 들었다.
자신의 생명들은 받지 못했던 복이,
자신의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에서 단 하나의 단어가 깊이 박혔다.
정복하라.
그날,
세상의 어떤 생명도 알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왜 야훼가 이번만은 직접 흙을 빚었는지.
왜 저 존재만 야훼를 닮았는지.
그리고 왜 모든 이야기가,
바로 그 흙으로부터 시작되는지를.
그 침묵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었다.
※ 이 소설은 저자가 직접 구성한 글감과 플롯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여 완성한 창작 소설입니다.
다음 편: 1부 — 땅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