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도래, 창조주를 닮은 사람은 어떻게 그 자리를 잃어왔는가? — 1장: 창조주의 형상

AI 시대. 많은 사람들은 지난 몇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AI가 그간 사람이 이룩해왔던 존재 이유와 그 가치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코딩과 각종 서비스 개발 등 특정 개발 환경에서의 기술 작업을 넘어, 피지컬 AI와 결합하여 공장, 호텔, 식당, 병원 등 사람의 고차원적 사고와 노동이 필요했던 전 영역에서 그 역할을 점차 대신해 가고 있다.

이제 사람의 일을 돕는 수준에서 대행하는 수준으로, 그리고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하고 빠른 처리를 해내는 수준에 올라서 있다. 최근에 와서 사람들은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해야 AI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이전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일상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니 몇 시간 만에 사람의 몇 배 혹은 수백 배의 속도와 정확도로 일을 처리해 내는 AI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치로 삼아 살아가야 할까? 이 고민에 답을 해보고자, 사람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이며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간다. 성경은 사람을 “창조주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 기록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개역개정)

그렇다면 창조주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성품의 닮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물리적 외형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개역개정)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 (베드로후서 1:4, 개역개정)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우선 외형의 닮음이 아니라 성품의 닮음이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신성한 성품으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이미 이러한 성품들이 나타나도록 지으셨다. 이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부부가,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세대와 함께 복을 나누고 다스리게 하셨다.

둘째, 관계의 닮음

하나님은 혼자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관계 안에 계시는 분이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말씀하신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완전히 사랑하고 완전히 소통하시는 그 관계의 방식을, 사람도 닮도록 지으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계 안에서 사랑하고 돌보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셋째, 능력의 닮음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그 다스리는 권위를 위임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개역개정)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땅에게 식물을 내라 하시자 땅이 식물을 냈고, 물에게 생물을 내라 하시자 물이 생물을 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신 그 명령 안에는 이미 정복할 수 있는 능력과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함께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형상대로 살도록 지어진 사람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이유가 조금씩 보인다. 창조주가 직접 다스리면 더 완전할 세상이었을 텐데, 굳이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로 세상을 가득 채우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기 전 이미 정교하게 설계하셨고, 자신이 설계한 대로 완벽하게 사람을 만드셨고, 만드신 후 너무 좋아하셨다. 그렇게 좋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어 다스려야 할 온 땅까지 저주를 받게 하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났지만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수였을까? 사람이 이렇게 될 줄 모르셨던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설계할 때부터 배신의 가능성을 아셨다. 우리가 아기 앞에서 박수치고 소리 내며 그 눈이 나를 향해 주기를 사랑스럽게 기다리듯이, 하나님도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셨다. 뒤돌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순종과 반역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영원히 갈라 놓을 것을 알면서도 — 그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이미 준비하셨다.

하나님의 죄 없으심과 사람의 죄성이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 사람이 무슨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주실 수 있는 유일한 길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독생자를 죽여 죄를 용서할 결심을 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의 생명을 걸고 사랑한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같은 성품으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자신이 그러하듯이 세상을 다스리며 기쁨에 충만한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그 형상에 걸맞은 성품과 관계의 방식과 다스리는 능력을 함께 주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그 좋음은 단순히 만들어 보니 괜찮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창조자의 눈에도 너무 좋을 만큼의 존재를 계획해서 만드셨다는 의미다. 성품과 관계와 능력,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존재. 그것이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사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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