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도래, 창조주를 닮은 사람은 어떻게 그 자리를 잃어왔는가? — 2장: 정복하는 자
“…땅을 정복하라…” (창세기 1:28, 개역개정)
창조 과정에서 흥미로운 장면들이 곳곳에 보인다. 모든 피조물들이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땅과 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창세기 1:20, 개역개정)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창세기 1:24, 개역개정)
땅과 물은 피조물이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물을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물과 달리 땅의 짐승에게는 별도의 복이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복은 사람을 통해 전달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닐까.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땅을 다스릴 때, 땅의 짐승들도 그 다스림 안에서 복을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세기 1:22, 개역개정) — 물에서 만들어진 생물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땅을 정복하라…” (창세기 1:28, 개역개정) — 하나님의 형상 사람들에게
정복의 의미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사람에게 그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정복이란 다른 주권자의 다스림 아래 있던 것을 새로운 정복자의 통치 아래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종류대로 생물을 만들어내었던 땅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 받은 사람에게 순종을 거부하였던 것일까? 땅이 처음부터 사람에게 순순히 순종하는 피조물이었다면, 굳이 정복이라는 표현을 쓰실 이유가 없었다. 정복이란 저항이 있는 곳에서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땅과 사람 사이의 긴장
생각해보면, 땅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식물과 동물을 만들어낸 창조의 동역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땅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직접 흙으로부터 빚어 만드셨다. 땅은 자신의 일부에서 만들어진 사람에게, 자신보다 높은 자리를 내어주고 순종한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땅은 창조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복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질서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릴 때 땅이 복을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질서였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반복해 보여준다. 오랜 주인을 섬겼던 충신들이 새 왕조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땅도 하나님의 명령은 인정했지만 사람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을 수 있다.
훗날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사람에게 먹게 한 것도 땅이 만들어낸 뱀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긴장을 아시고, 사람에게 다스림이 아니라 먼저 정복할 수 있는 권위를 주신 것이 아닐까.